지도 반출 논쟁 격화…“API 시장 독점ㆍ생태계 붕괴 우려”√ 산업계 우려 속 고정밀 지도 반출 영향 국회 토론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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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국내 지도 데이터의 반출이 국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커넥트데일리 |
(커넥트 데일리=최한민 기자)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둘러싼 논의가 산업계를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국회에서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를 가졌다.
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국내 지도 데이터의 반출이 국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 세미나는 기존 안보 중심 논의에서 벗어나 국내 산업 생태계에 미칠 구조적 영향을 집중 조명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토론회는 국민의힘 고동진 의원과 안철수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상식 의원이 공동대표로 있고 국민의힘 이달희 의원이 연구책임의원으로 활동 중인 국회 연구단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구조개혁 실천 포럼’이 주최하고 디지털경제포럼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공동 주관했다.
고정밀 지도 반출 이슈는 이미 지난 8일 안보 이슈 중심의 토론회를 통해 다뤄지기도 했지만 이날 논의는 지도 데이터를 둘러싼 산업 주권, 플랫폼 종속, 시장 점유율 잠식 등의 경제적 피해에 초점을 맞춰졌다.
특히 정부가 오는 15일까지 구글의 지도 반출 요청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산업계와 학계는 이 사안이 단순한 기술 이전이 아니라 산업 주권과 생태계 지속성이 걸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구글의 지도 반출 요구는 ‘측량ㆍ수치 지도 등의 국외반출 협의절차 운영지침’에 따라 국토지리정보원 주관 7개부처 협의체가 60일 내 회신해야 하는 사안으로 그 마감일이 15일로 예정돼 있다.
다만 사안의 중대성과 파급력 등을 고려해 정부는 규정상 가능한 60일 추가 연장 여부도 깊이 있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고동진 의원은 “고정밀 지도는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드론 산업의 기반이자 국가 전략 자산”이라며 “이번 논의가 단순한 문제 제기를 넘어 실질적 대안 마련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개회사를 밝혔다。
![]() ▲ 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국내 지도 데이터의 반출이 국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를 맡아 발표를 진행한 (사진 왼쪽부터)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 모정훈 교수, 가천대학교 경영학과 전성민 교수. © 커넥트데일리 |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 모정훈 교수는 ‘고정밀 지도의 가치와 반출의 영향’이라는 주제로 “고정밀 지도 구축에는 수천억 원에서 1조 원이 넘는 세금이 투입된다”며 “이런 공공 자산이 외국 기업에 그대로 넘어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모 교수는 “구글이 국내 스타트업보다 최대 100배 비싼 가격으로 지도 API를 제공하면서 플랫폼 생태계를 사실상 잠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플랫폼 경쟁은 ‘크기가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국내 기업이 경쟁 자체를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면 결국 구멍가게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지도 생태계 붕괴를 막기 위해 국회와 산업계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 구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두 번째 발제자 가천대학교 경영학과 전성민 교수는 플랫폼 경제의 구조 중에서도 소수의 글로벌 기업이 핵심 인프라를 독점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 전반에 지배력을 확장해 나가는 구조적 특성에 대해 지적했다.
전 교수는 ‘조세 측면에서 본 해외 기업의 국가 자산 활용’이라는 주제를 통해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단순한 공간정보를 넘어서 사용자와 공급자 양측을 연결해 수익을 창출한다”며、“플랫폼 기업이 지도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면 검색, 광고, 모빌리티, 커머스 등 다양한 산업에서 연쇄적인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도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기업의 국내 활동은 최소화되고 수익은 해외 본사로 송금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 같은 방식은 국내 법제도와 세제, 공공성과 완전히 분리된 수익 구조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또 “정밀 지도는 자율주행과 AI 산업의 기반으로 이를 해외 기업에 넘길 경우 국내 디지털 산업 전반의 기술 주권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며 “정부는 단순한 기술 이전이 아닌 산업 지배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요구로 판단하고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디지털경제포럼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이상우 교수가 좌장을 맡아 구글의 고정밀 지도 반출 요구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열띤 논의가 펼쳐졌다.
경희대학교 지리학과 최진무 교수는 “지도를 둘러싼 경쟁은 디지털 자원을 차지하려는 ‘디지털 광산’ 경쟁”이라며 “정부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무분별한 반출을 허용할 경우 중소 공간정보 기업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지도는 단지 길을 안내하는 수단이 아니라 영상, 공간정보 등 다양한 산업의 중요한 기초 데이터”라고 강조했다.
국립부경대학교 정보융합대학 이승엽 교수는 고정밀 지도의 반출이 국가 안보와 기술 주권 모두를 위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구글은 국내 안보 시설의 저화질 요청에도 수년간 응하지 않고 있고 과거 우크라이나 전쟁 중 군사 시설 정보가 노출된 사례처럼 상업 플랫폼이 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스럽다”면서 “자율주행이나 AI 기술 유입이 기대되더라도 글로벌 기업의 진입에서 국내 일자리 창출이나 세수로 연결된 사례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 ▲ 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국내 지도 데이터의 반출이 국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 발표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 커넥트데일리 |
성균관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이창준 교수는 고정밀 지도가 AI, 증강현실, 자율주행 등 차세대 기술의 핵심 인프라라고 설명하며 “구글 등 외국 플랫폼에 이를 넘기는 순간 국내 플랫폼은 지역성과 차별성을 잃고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창준 교수는“로컬 플랫폼이 잘 구축돼 있으면 해외 사용자도 불편을 감수하고 사용한다”며 “한국은 과거에도 한글, 지역 기반 콘텐츠로 네이버가 구글을 압도한 사례가 있는 만큼 지역성을 살린 국내 플랫폼 경쟁력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정주연 전문위원은 “스타트업 다수가 구글 생태계에 묶여 있어 공개 발언이 어려울 뿐 생태계 전체는 분명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지도 API는 한 번 도입하면 쉽게 바꾸기 어려운 락인(lock-in) 구조가 강하다”며 “이미 지난 2018년 구글은 API 요금을 최대 1,400% 인상해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사업을 접거나 기능을 축소했다”고 지적했다.
정주연 전문위원은 “이번 결정을 구글에 허용하면 향후 애플, 바이두 등 다른 글로벌 기업의 요청도 막기 어려워진다”며 “이 문제는 외교적 카드가 아니라 디지털 주권, 산업 자립성, 생태계 경쟁력을 걸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공간정보산업협회 이일호 본부장은 “최근 업계 설문조사 결과 90% 이상이 반대 입장을 보였다”며 “이는 단순한 거부감이 아니라 시장 점유율 독점과 기술 종속에 대한 생존 위협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일본처럼 외국 기업에 지도 데이터를 유상 제공하고, 그 수익을 국내 중소기업 지원에 활용하는 구조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디지털경제통상과 고장원 과장은 “구글 요청은 현재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관계부처 협의체에서 안보, 산업, 통상 측면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관광 편익, 위치 기반 서비스 등 산업 전반의 효과를 살펴보되 기술적 안보 우려가 해소되지 않으면 반출은 어렵다는 입장”이라는 시각을 밝혔다.
고 과장은 “일부에서는 API 통일이 효율성을 높인다고 하지만 오늘 제기된 법인세 회피, 규제 무력화, 공정경쟁 훼손 등의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며 “정부는 현장의 다양한 우려를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도 지난 8일에 이어 지도 반출 요구 당사자 구글코리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토론의 균형성이 떨어졌다.
글로벌 기업의 요청으로 촉발된 사안임에도 정작 당사자의 입장이 빠진 채 논의가 진행된 점에 대해 유감을 나타내는 참석자들도 있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공간정보 산업계 관계자는 “이번처럼 공간정보 산업이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일은 매우 드물다”며 “이번 논의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