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도면은 말 없는 명령서

√ 현장 눈높이를 잃어버린 스마트 건설의 그늘

박종해 측량및지형공간정보기술사 | 기사입력 2026/05/26 [18:50]

[전문가 칼럼] 도면은 말 없는 명령서

√ 현장 눈높이를 잃어버린 스마트 건설의 그늘

박종해 측량및지형공간정보기술사 | 입력 : 2026/05/26 [18:50]
본문이미지

▲ 효명이엔씨 박종해 대표이사     ©커넥트 데일리

 

(커넥트 데일리=박종해 측량및지형공간정보기술사) 도면은 말 없는 명령서다. 전쟁터에서 하달된 명령서를 두고 수행원들이 제각각 다르게 해석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지금 우리 건설 현장의 도면이 딱 그 꼴이다.

 

최근 현장에서는 협력업체 직원부터 감리원까지 모두에게 생소한 ‘2-bundle(이형 다발철근)’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는데 도면에는 철근 하나만 그려놓고 2-bundle 이라고 표기해 놓고 있다.

 

정작 현장에서 배근할 때 이형 단면의 긴 쪽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짧은 쪽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상세한 설명이 없다. 최일선에서 도면이라는 명령서를 받아 든 근로자들이 혼돈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도면에도 ‘눈높이’가 필요하다

현행 교육계에서는 눈높이 학습을 그토록 강조한다. 그렇다면 건설 현장은 어떠한가. 

 

현재 대한민국 건설 최일선은 기술력이 부족하거나 월등히 떨어지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 철근 반장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을 지휘하느라 하루하루 고생하며 사투를 벌인다. 원청사와 감리원 역시 고생하기는 매한가지다.

 

도면은 현장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공통된 용어로 설계되고 작성되어야 한다. 

 

설계자 본인 기준이 아니라, 최일선 근로자가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야 한다. 아무리 완벽하고 멋진 도면을 작성했다 한들, 최일선에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쓸모없는 쓰레기 도면에 불과하다. 

 

현장 실정은 안중에도 없이 표현을 홀랑 생략해 버린 도면을 과연 완벽한 도면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소통조차 힘든 외국인 근로자들이 철근을 직접 조립하고 배근하는 이 냉정한 현실 속에서, 화려한 BIM과 스마트 건설이 정말로 가능하다고 믿는가?

 

AI 검측과 스마트 기기로 대체하자고?

최근 사람(감리원) 대신 AI나 패드, 스마트폰을 이용해 건설 현장을 검측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묻고 싶다. 교량의 기초 철근 배근 상태를 단 한 번이라도 직접 보고 하는 소리인지 말이다.

 

철근이 빽빽하게 얽혀 있어서 뒤쪽과 속 안은 사람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현장 실정을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인가 싶다. 사람 눈으로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 않는 구조물을, 사람 눈을 대신한 스마트폰 카메라로 비춘다고 해서 안 보이던 속 내부가 갑자기 보인다는 것인지 현실을 무시한 생각들을 앞세운다.

 

스마트폰이나 패드로 종이 도면을 대체하면 된다는 논리 역시 현장을 모르는 이들의 착각이다. 그런 작은 화면으로는 구조물의 전체 윤곽과 개념을 파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종이 도면 대신 A1 사이즈의 대형 모니터를 현장까지 들고 다닐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아주 복잡한 구조물의 철근 배근을 정확히 검측하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현장에서 사라진 A1 사이즈의 종이 도면을 다시 꺼내 드는 것이다. 

 

현장에 배근된 철근을 석필(분필)로 하나하나 마킹해 가며 종이 도면과 대조하는 아날로그 방식이 첨단 스마트폰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최악의 조건에서는 최신식 기술이 아니라, 가장 원시적이고 확실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현장의 현실이다.

 

진정한 스마트 건설의 시작은 설계자의 연구로부터

설계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는 최일선 현장에 종사하는 철근공이나 반장, 현장 기술자보다 앞서 연구하고 고민하는 전문가들이다.

 

그렇다면 이 전문가들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최일선 현장의 애로점과 문제점을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시공 오차가 발생하지 않을지, 기술력이 부족한 작업자도 혼돈 없이 한눈에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하여 친절한 도면을 작성하는 것. 그리하여 도면이라는 명령서를 받아 든 최일선에서 누구나 똑같이 이해하고, 누구나 똑같은 완벽한 시공 결과를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다.

 

현장과의 혼돈을 없애는 설계,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진짜 스마트 건설이자 BIM의 본질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인물 포커스
메인사진
신경수 팀장, 해양 생태계 진실의 방으로
1/5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