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김정호를 실제 오픈소스 개발자라고 부르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당시에는 소프트웨어나 오픈소스 라이선스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픈소스는 김정호의 활동을 현대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비유다.
김정호의 지도 제작은 한 사람이 모든 지역을 직접 측량하여 완성한 작업이라기보다, 기존에 축적된 관찬지도, 군현지도, 지리지, 여행과 답사에서 얻은 정보 등을 수집하고 비교하여 하나의 일관된 지도 체계로 재구성한 작업에 가깝다. 이는 여러 사람이 만든 코드와 데이터를 검토하고 통합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오픈소스 개발 방식과 닮아 있다.
특히 『대동여지도』는 전국을 여러 장의 목판으로 제작해 필요한 지역만 선택하거나 서로 연결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오늘날의 지도 타일, GIS 레이어, 모듈형 소프트웨어처럼 전체 시스템을 작은 단위로 나누어 관리하고 조합할 수 있는 구조였다. 한 장의 거대한 지도를 만드는 대신, 여러 도엽을 연결해 전국 지도를 구성한 것이다.
김정호의 더 중요한 성취는 새로운 정보를 독점적으로 만들어냈다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하던 수많은 정보를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었다는 데 있다. 자료는 존재했지만 서로 다른 축척과 표현방식으로 흩어져 있었고, 일부 계층이나 기관만 접근할 수 있었다. 김정호는 이를 통일된 기호와 체계로 편집하여 이동, 행정, 상업, 군사, 지역 이해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전환했다.
이 점에서 김정호의 작업은 오픈소스의 핵심 정신과 연결된다.
첫째, 지식은 축적되고 연결될 때 더 큰 가치를 만든다.
김정호는 기존 자료를 부정하지 않고 수집·검토·개선했다. 오픈소스 역시 앞선 개발자의 결과물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능을 만든다.
둘째, 정보는 사용할 수 있는 형식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자료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사회적 가치가 생기지 않는다. 표준화된 형식과 명확한 기호, 조합 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도구의 가치는 소유보다 활용에서 발생한다.
지도는 보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찾고 지역을 이해하며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소프트웨어도 코드 자체보다 그것이 해결하는 문제에서 가치가 발생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오픈소스를 활용하면서도 그 기반을 만드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한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 개발한 GIS 엔진, 공간 데이터베이스, 지도 라이브러리와 인공지능 모델을 사용하지만, 핵심 기술을 직접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조직과 개발자는 부족하다. 이는 지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만, 새로운 지도 체계를 만들고 수정하며 다음 세대에 남기는 사람은 적은 상황과 같다.
김정호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단순히 데이터를 무료로 공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표준을 만들고, 오류를 고치며, 자료를 계속 갱신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김정호가 오늘날의 개발자였다면 완성된 지도 한 장만 배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도 데이터의 구조와 제작 방법을 공개하고, 지역별 수정사항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정보를 반영해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공간정보 플랫폼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산자 김정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대동여지도’라는 하나의 결과물만이 아니다. 흩어진 지식을 연결하고, 복잡한 정보를 표준화하며, 사회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태도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김정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오픈소스 정신이다.
Who is
고려대학교 이학박사(환경생태공학과 GIS/RS 전공) 서울시립대학교 공간정보공학과 겸임교수(2018 ~현재) 주식회사 카본에이스 대표이사 겸 개발자 <저작권자 ⓒ 커넥트 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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