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 문서 표준 기업에서 AI 플랫폼 기업으로 갈림길수십 년 쌓인 HWP 문서, 파편화로 LLM 전환 기회 놓쳐
그럼에도 이 거대한 한국어 문서들은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에서 활용되지 못한 채 파편화되어 한글과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문서 표준의 기억을 문화 경험으로 다시 호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글과컴퓨터는 21일 서울 홍대에서 ‘한컴타자’ 오프라인 팝업 행사를 열고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캐릭터 체험과 게임, 공연을 결합한 참여형 콘텐츠를 마련한다.
온라인에서 형성된 관심을 오프라인 경험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이번 행사는 브랜드 이벤트를 넘어 자사가 만들어 온 출발점을 다시 호출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한컴타자는 윈도우 운영체제에 포함된 기능이 아니라 한컴이 별도로 제공한 프로그램으로 키보드 입력을 익히는 도구를 넘어 컴퓨터 활용의 입문 경로를 사실상 형성해 왔고 많은 이용자들이 이 과정을 통해 타자를 익힌 뒤 한글 문서 작성으로 이어졌다.
이런 관점에서 한컴은 워드 소프트웨어 기업이 아니라 사용자 경험의 시작을 설계한 사업자로 기능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 사용자 경험은 1990년대 PC 보급기와 맞물려 학교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고 그 결과 공공의 행정 문서와 보고서 작성 체계 전반이 한컴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이 과정에서 한컴은 프로그램 공급을 넘어 문서 작성 방식과 형식을 규정하며 사실상 국내 HWP 문서 표준을 구축한 것이라 평가된다.
이 같은 회사의 역량은 당시 글로벌 기업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를 검토할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컴퓨터 활용 기술의 중심이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이동하면서 경쟁력의 기준이 문서를 얼마나 잘 작성하느냐에서 문서를 얼마나 많이 학습했느냐로 바뀌었고 이 지점에서 한컴은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수십 년간 HWP 기반으로 방대한 문서들이 개별적으로 생산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데이터는 개인 PC와 기관 내부 시스템에 파편화된 채 분산돼 있어 학습 가능한 형태로 축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클라우드 기반 협업 환경을 통해 문서 생성 과정을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이며 데이터를 축적해 왔고, Microsoft 365와 Google Docs는 문서 작성 도구를 넘어 사용자 입력과 문맥이 지속적으로 쌓이는 구조를 형성하면서 생성형 인공지능 경쟁력의 기반을 마련했다.
결국 한컴은 문서 작성의 시작을 장악했지만 문서가 생성되고 축적되는 흐름까지 연결하지는 못했다.
결국 이번 한컴타자 행사는 과거에는 타자를 통해 문서로 진입하는 경로를 설계했던 기업이 그 경험을 콘텐츠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레거시의 재활용이자 동시에 기술 전환의 공백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한컴이 가진 자산은 공공과 교육을 통해 축적된 한국어 문서 환경과 문서 작성 경험으로 다른 기업이 쉽게 확보하기 어렵다.
특히 행정 문서와 표준 서식은 한국어 기반 인공지능 모델 구축에 있어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과거 유산이 아니라 미래 기술로 연결될 수 있는 잠재력이다.
그 잠재력을 어떤 구조로 전환하느냐에 따라 문서를 작성하게 만드는 도구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문서가 생성되고 축적되며 학습으로 이어지는 인공지능 플랫폼 기업으로 확장할 것인지에 따라 한컴의 다음 단계인 미래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한컴은 이러한 데이터 파편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핵심 역량을 ‘데이터 추출 및 자산화’ 영역으로 전환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문서 파싱(Parsing) 솔루션을 통해 기존 폐쇄망에 갇혀 있던 방대한 비정형 HWP 문서를 인공지능이 즉시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 형태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중이다.
막대한 자본이 요구되는 거대언어모델(LLM) 직접 개발 경쟁에 뛰어드는 대신 외부의 다양한 선도적 인공지능 모델을 자사의 문서 생태계와 연결하는 ‘AI 오케스트레이션(조율자)’ 전략으로 가고 있다.
특히 데이터 유출에 민감한 공공기관과 기업 고객을 겨냥해, 내부망 환경에서 안전하게 구동 가능한 도메인 특화 경량형 언어모델(sLLM) 구축에 투자를 집중하며 돌파구를 마련 중이다.
또한 계열사 한컴인스페이스를 통해 위성 영상 및 디지털 트윈 기반의 공간정보 데이터를 확보하며 텍스트 문서를 넘어선 물리적 환경의 데이터화까지 대비하는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 한컴의 미래 경쟁력은 수십 년간 축적된 문서 유산과 새롭게 확보하는 공간정보 데이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제하여 인공지능 기술과 조율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커넥트 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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